06. 나를 잃지 않는 ‘우리’
- guhnyulwon
- 7월 14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일 전
지선
나는 깊은 관계를 어려워하면서도 사람을 좋아했고, 구속이 싫으면서도 공동체를 좋아했고, 함께 성장한다는 말을 좋아하면서도 삶의 방향만큼은 스스로 선택하고 싶었다. 오랫동안 그것은 모순처럼 느껴졌다. 함께하고 싶은데 묶이고 싶지는 않았고, 연결되고 싶은데 나를 잃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알게 되었다.
내가 원했던 것은 소속이 아니라,나를 잃지 않는 연결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차이를 알지 못했다. 함께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받은 것을 잊지 않으려 했고, 맡은 역할을 끝까지 감당하려 했으며, 함께한 시간을 소중히 여기려 했다. 그것이 잘못은 아니었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그런 모습들이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설명하는 기준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나는 좋은 사람이어야 했고,책임 있는 사람이어야 했으며,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역할을 살아가는 나보다역할 자체가 더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여기 있어도 되는 사람인가.’
오랫동안 이 질문은 나 자신을 향한 질문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묻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여전히 의미 있는 사람인지, 필요한 사람인지 확인받고 싶었던 것이다. 관계는 어느새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비춰주는 거울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상한 감정이 생겼다.
관계가 멀어질 때마다 슬픔보다 죄책감이 먼저 찾아왔다. 그 사람이 싫어진 것도 아니었고, 관계를 끊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삶의 방향이 달라졌을 뿐인데 마치 내가 무언가를 저버린 사람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처음에는 그것을 책임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내가 느낀 죄책감은 사람을 향한 감정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역할이 사라진 뒤에도 나는 여전히 괜찮은 사람인가를 묻는, 나 자신을 향한 불안이었다. 그래서 홀로 서는 일이 두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조금 다른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기 질문을 지키면서도 타인과 연결되는 사람.
모두의 기대를 맞추려 애쓰기보다 자신이 감당할 몫을 분명히 하는 사람.
자기의 부족함이 드러나는데도 수치심으로 덮지 않고, 자신의 언어로 다시 살아내는 사람.
이번에는 어렵다고 말하면서도 관계를 끊지 않는 사람.
누군가에게 기대어 존재를 증명하는 관계가 아니라,서로의 존재를 더 크게 살아낼 수 있게 하는 관계.
나를 지우고 하나가 되는 공동체가 아니라,각자의 고유함이 선명해질수록 더 깊이 연결되는 공동체.
그 모습을 보며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홀로 선다는 것은 혼자가 된다는 뜻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로 서 있을 때 관계는 더 건강해졌다. 내가 오래 바라던 함께함은 나를 잃어야 가능한 관계가 아니었다.
지금의 나는 ‘우리’를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를 대신 살아주는 사람들이 아니다.
각자의 삶을 살아낸 사람들이 기꺼이 함께 서기로 선택한 관계다.
혼자와 함께는 반대말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기 자신으로 설 수 있을 때비로소 우리는 함께 설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란
나를 지우는 이름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의 존재를 지켜주는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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