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시선이 만든 ‘우리’
최종 수정일: 7월 26일
정근아
단골 카페에 앉아 있다. 아무런 계획 없이 집을 나섰기에 커피를 마시며 읽을 책도 없고, 떠오르는 생각을 적을 노트도 없다. 심지어 핸드폰 배터리는 3%밖에 남지 않았다. 이따가 마트에서 장을 보고 결제도 해야 하니 함부로 사용할 수도 없다.
오늘따라 미디엄 사이즈 커피를 주문했더니 생각보다 긴 시간을 그저 가만히 보내야 할 듯하다. 그렇게 뜻밖의 '비워진 시간'이 찾아왔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도, 어디론가 향해야 한다는 마음도 잠시 멈춘 채, 나는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시간 위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오랜만에 이유 없이 주어진 여유를 천천히 누려본다. 그런데 분명 혼자 카페에 앉아 있는데도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늘을 보고, 나무를 바라보고, 사람들을 바라보다 문득 ‘우리’라는 감각이 스쳐 지나갔다.
나를 기억해 주는 종업원의 짧은 눈인사.
토토로를 떠올리게 하는 거대한 두 그루의 나무.
강아지 인형과 과자 봉투를 소중히 품에 안고 지나가는 어린아이.
커피를 기다리며 전화로 열띤 대화를 나누는 아저씨.
서로 아무 관계도 없어 보이는 풍경이 하나의 장면처럼 내 안으로 들어왔다.
그 순간 세상은 더 이상 스쳐 지나가는 배경이 아니었다.
바라보는 순간, 그것들은 나와 이어지고 조금씩 내 삶의 일부가 되어 갔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세상을 이해하며 살아간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기 전에 먼저 바라보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무엇을 오래 바라보는가에 따라한 사람의 삶은 달라진다.
같은 도시에서도누군가는 경쟁을 보고,누군가는 외로움을 보고,누군가는 사람들 사이를 조용히 흐르는 온기를 본다.
달라지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림도 늘 그랬다. 처음에는 형태를 따라 그렸다. 하지만 그림을 그릴수록 형태보다 분위기를, 분위기보다 사람의 삶을 바라보게 되었다. 어느새 그림은 대상을 그리는 일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되어 있었다.
거창한 지식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인간과 삶을 오래 바라보는 일.
한 사람의 표정, 계절이 바뀌는 속도, 누군가의 침묵 같은 작은 장면들이 조금씩 인간다움을 가르쳐 주었다.
그렇게 오래 바라본 끝에 알게 되었다.
‘우리’란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같은 세상을 함께 바라보기 시작한 사람들이다.
카페는 여전히 같은 카페였다.
달라진 것은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혼자 앉아 있지 않았다.

_edited_edited_edited.png)
_edited_edited_edited.png)
댓글